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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철학

도한호의 화요담론·15

  • 칼럼
  • 입력 2024.02.26 20:56

대학에 입학해서 교양과목을 수강할 때, 제일 재미있었던 과목은 김영철 교수(님)의 「경제원론」(최호진 저)이었고, 제일 어려웠던 과목은 서동순 교수(님)의 「철학 개론」(김진섭 저)이었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도한호 전 총장(사진 출처 : 아멘넷 )
한국침례신학대학교 도한호 전 총장(사진 출처 : 아멘넷 )

 

김영철 선생님은 한 시간 내 꼼짝하지 않고 한 자리에 서서 높낮이가 없는 음성으로 봉건주의 시대의 장원제도 등 경제학의 역사와 지배구조를 조용조용 설명하셔서 학생들이 대부분 지루해했다. 그런데, 나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의 충실한 강의 내용이 좋았고 재미도 있어서 항상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이런 김 선생님과 달리, 철학을 강의하시던 서동순 선생님은 강의 중에, 출퇴근길에 목격한 것도 말씀해주시고 가끔은 유머도 하셨지만, 교재로 채택한 한문투성이의 세로쓰기 「철학 개론」 교재가 너무 어려워서 나는 강의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런데, 4월의 마지막 주간 철학 강의 시간에, 선생님은, 흑판에 ‘Apple Philosophy’라고 쓰시고는 수강생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함용환의 이름을 부르시고는, “함 군이 이걸 한번 읽어보겠나?” 하고 말씀하셨다. 용환이는, 주저하지 않고 ’애플 필라소피‘ 하고 똑똑하게 읽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맨 앞줄에 앉은 내게,   “도군, ‘애플 필라소피’가 무슨 뜻이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애플은 사과, 필로소피는 철학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도군, 철학은 낱말 풀이가 아니야. 철학이 단어 해석이라면 누구나 철학가가 되게.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내가 왜 묻겠나?” 하시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기 사과가 열 개씩 두 무더기가 있는데 두 사람이 각각 열 개씩을 먹었다고 가정 하세. 그런데 한 사람은 좋은 사과 열 개를 먹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나쁜 사과 열 개를 먹었어. 누가 말해 보게. 두 사람이 같은 사과를 열 개씩 먹었는데 왜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그때 별명이 철학자인 두현이가 대답했다.   “선생님, 그건 말입니다. 처음 사람은 흠이 없고 맛있어 보이는 것부터 차례로 먹었고, 두 번째 사람은 좋은 것은 아껴두고 상태가 나쁜 것부터 골라서 열 개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맞았어. 정답이야. 그런데 철학은 정의(定義)가 내려진 사실이라도 단정(斷定)하지 않고 양보적으로 말하는 것일세. 즉, “나쁜 것부터 골라서 열 개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해서는 안 되고, “나쁜 것부터 열 개를 먹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야 하는 것일세. 알겠는가?” 

“요컨대 사과 철학은 좋은 것, 선한 것을 먼저 취하면서 매사를 긍정하라는 교훈이 아니겠나? 행복이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란 말이네.  행여, “좋은 것은 동생 주려고 못생긴 것부터 먹었는데요.” 뭐, 이런 말은 철학을 논하는 마당에서는 금기라네. 도덕에서 설파할 주제이지.”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철학에 한발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이어서, “제군은 사과 철학의 원리를 삶에 적용해야 하네. 그러면, 삶 속에 긍정의 힘이 생길 것이네. 내일은 수원지로 소풍 가는 날이지? 이만” 하고 좀 일찍 강의를 끝내셨다. 

선생님은 미국으로 가신 후 ‘서울 가신 오빠’가 되었지만, 선생님이 주신 철학은 새콤한 듯 달콤한 듯, 언제나 내 입안에서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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