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부산찬양산교회 노주하 목사 아가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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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뱁티스트투데이
  • 승인 2020.04.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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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5-6.
거룩한 상사병

(16). [거룩한 상사병]. 아가서 2:5-6.

오늘은 순서에 따라 아가서 2:5-6을 근거로, “거룩한 상사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관련 찬송가는 “사랑은 여기 있네”입니다. 아가서 2:5-6의 말씀입니다.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아멘.

성경은 사랑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방식과 과정을 통하여 실행되었는가 하는 것을 상세하게 기록한 하나님의 사랑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로 죽어가는 이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게 하셨던 그러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16의 말씀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태초부터 예정하신 자들을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렇게까지 사랑하시는지 우리들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신비들 중의 하나입니다. 요한일서 4:10의 말씀입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이와 같이 성경책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인 아가서 2:5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교회”, 즉 “주님의 신부”로 비유되고 있는 술람미여인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을 향한 목마름의 최고점, 주님을 향한 갈망의 극치, 주님을 향한 가난한 마음의 극한, 주님을 향한 경외함의 절정으로 묘사되는, 이 여인의 사랑의 마음은 사랑으로 인하여 병이 생겼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사랑으로 인하여 생기는 병을 상사병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왕을 향한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주님을 향한 경건한 성도들의 “거룩한 상사병”을 상징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상사병은 일반적으로 어느 한 쪽만 짝사랑하는 경우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례와 같이 중간에서 사랑을 방해하는 강력한 어떠한 힘이 작용할 때 생기는 병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왜 상사병이 생겼습니까? 사실 주님과 성도들 간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는 이미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고, 그 사랑을 방해할만한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응답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상사병이 생길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말씀은 왕이신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인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향한 이 상사병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시편 42:1-3의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아멘.

이 찬송시를 근거로 거룩한 상사병의 원인을 몇 가지로 추리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상사병은 사랑의 확신이 부족할 때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눈빛을 쏘았습니다. 그 여성도 남자의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눈빛으로 마주 쏘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의 마음에는 무언가 갈증이 생겼습니다. 저 남자가 나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눈은 맞았지만 여성에게는 남자의 사랑의 수준을 가늠해 보고자 하는 갈증이 생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면 거룩한 상사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상사병은 영적 조급증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모르기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들의 시간표가 언제 성취될지 늘 조급해 합니다. 조바심을 칩니다. 식사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에도, 엄마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조급해하며 조바심치는 아이들의 마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는 이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어야 할 시점인데, 하나님의 응답은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면, 영적인 조급증이나 조바심으로 인하여 상사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상사병은 체험적 신앙으로 증명하고 싶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방금 읽었던 시편 42:3에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진짜 하나님인데,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이 사실을 전혀 몰라줄 때 믿는 자들의 마음에 답답함과 갈증이 생깁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도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는 특별한 현실적인 기적이나 역사가 일어난다면 정말 내 마음이 시원하겠는데 하는 식의 영적인 갈증입니다. 이와 같이 체험적 신앙으로 증명하고 싶을 때 거룩한 상사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술람미 여인의 상사병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약 방금 우리들이 조금 전에 나누었던 거룩한 상사병의 원인 세 가지 중에서 술람미 여인의 상사병에 적용될 만한 원인을 찾는다면 몇 번째 원인이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까? 기억을 돕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첫 번째는 사랑의 확신의 부족으로 인한 상사병, 두 번째는 영적 조급증으로 인한 상사병, 세 번째는 체험적 신앙으로 속히 증명하고자 하는 갈증에서 생기는 상사병입니다.

이 세 가지 원인 모두 다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이 술람미 여인을 데리고 잔칫집에 동행하여 이미 사랑의 깃발까지 들어 주었지만 술람미 여인은 여전히 왕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언제 자신과 결혼하여 함께 살게 될까 하는 조급증이 여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왕과 결혼하여 많은 아들 딸들을 낳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 다른 여인들에게도 자신들의 진정한 사랑을 증명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술람미로 하여금 상사병에 걸리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영적인 상사병의 원인들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입니다. 우리들은 수시로 주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안개가 날 가리듯 믿음의 확신이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 지에 대한 영적인 갈증이 항상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우리들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해 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증명해 보고자 하는 영적인 갈망 역시 성도들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영적인 상사병에 걸린 성도들을 미워하시거나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시때때로 그러한 영적인 갈급함과 욕구를 기대하시며 친히 채워주시기도 하십니다. 아가서 2:5-6의 말씀입니다.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아멘.

우리 성도들에게 거룩한 영적인 상사병이 생길 때마다 두 팔로 품에 안아주시고, ‘건포도’와 ‘사과’로 대변되는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먹여 주시며, 우리들을 다독여 주십니다. 영적인 에너지를 보충해주시고, 영적인 갈증을 해갈시켜 주시는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우리들을 먹여 주십니다. 건포도와 사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더욱 더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부부를 두 부류로 크게 이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족과 같은 부부이고, 다른 하나는 연인과 같은 부부입니다. 먼저 가족과 같은 부부는,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갈증은 없지만, 없으면 그저 불편하거나 허전한, 이른 바 ‘정’으로 살아간다는 부부입니다. 상대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인해서 무덤덤해지는 것과는 차원이 조금 다릅니다. 비록 처음 만나 썸을 타고 뜨겁게 연애했던 감정은 사라졌지만 습관적으로 부부관계를 무난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부부라 할지라도 이혼하지 않고 백년해로 한다면 꽤 괜찮은 부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인과 같은 부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30년, 50년, 70년 이상을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설레임으로 신혼부부처럼 살아가는 부부입니다.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이런 부류의 부부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를 부부로 비유한다면, 하나님은 아마도 연인과 같은 부부를 원하실 것입니다. 꼴 백년이 지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갈망이 존재하는 그러한 영적 관계를 기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주님을 믿었던 때의 첫사랑과 같은 감동과 감격이 조금도 식지 않는, 열정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비유한다면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거룩한 상사병을 얻을 정도의 열정적인 관계일 것입니다. 만약 예배를 드려도, 찬송을 불러도, 기도를 드려도 마음속에 아무런 감동이나 감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주님은 별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을 주님과 함께 했더라도 여전히 첫사랑의 감동과 감격과 열정이 살아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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