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를 넘긴 후
죽을 고비를 넘긴 후
  • 뱁티스트투데이
  • 승인 2019.01.2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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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침신대, 구약학)

대체 하나님은 왜 모세를 갑자기 죽이려 했을까요? (4:24-26) 그것도 히브리 노예를 애굽에서 이끌어 낼 큰 사역을 맡기고 나서 그 사역을 시행하기 바로 직전에 왜 갑자기 죽이려 했을까요?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모세에게 닥친 이 일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황당한 일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일생 속에 그에게 닥친 죽을 고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일생 중 그가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일이 모두 세 번 나오며, 모세 인생의 가장 위대했던 날들은 모두 이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찾아 왔습니다.

먼저, 모세는 태어자자 마자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인의 아이로 태어났는데,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노예가 낳은 남자 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하였던 겁니다. 그러나 아이를 받던 산파의 기지로 모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지만 모세는 이 고비를 넘긴 후에 아니러니 하게도 애굽의 왕자로 성장합니다. 노예로 태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왕자가 된 것입니다.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입니다.

두 번째 죽을 고비는, 모세가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애굽 사람 하나를 때려죽이고 나서 찾아옵니다. 왕자로 곱게 자라 주먹질 해봤을 리 없는 모세가, 자신의 친족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쳤는데 그만 죽고만 것입니다. 바로는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모세는 도주자가 되어 죽음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모세의 인생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역전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미디안에 도망간 전직 왕자이며 살인자인 모세는 처량하게 양떼를 몰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친족 히브리 노예를 이끌어 내라는 어마어마한 소명을 받게 됩니다. 이 쯤 되면 머리가 좋은 모세는 자신의 구사일생 출생기가 다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노예에서 왕자가 되었듯이, 살인자였다가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인생의 역전은 모두 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찾아 왔습니다.

이 두 번의 죽을 고비는 모두 우리에게 적용 할 수 있습니다. 첫 죽을 고비는 모세가 아무것도 대처 할 수 없는 완전 무방비 상태에 닥친 고난이었습니다. 모세가 어찌 자신의 출생과 신분을 결정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에도 내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주어지는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 환경이라든가,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인생의 어두움, 장애, 내가 아무 것도 손 쓸 수도 없이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죽을 것만 같은 인생의 위기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극복한다면, 우리에게도 모세의 경험과 같은 은혜가 임하리라 생각됩니다.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죽을 고비는 사실 자기 자신의 과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람을 쳐 죽였으니, 변명할 수 도 없는 어쩌면 첫 번째 위기보다도 더 큰 위기입니다. 그 어려움이 온 것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자책하여야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지금까지 이루어 놓았던 모든 것들을 박탈당하는 위기이기에, 아마 죽을 고비를 넘겨도 자살 충돌이 일어날 뼈아픈 고비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이 저주스럽고 모든 자존감을 박탈당했을 때에 하나님은 오셔서 그의 인생의 새로운 청사진을 친히 보여 주신 겁니다.

모세의 두 번째 위기는 어떻게 우리 인생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죽을 위기 속에서 모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아실 겁니다. 인간의 자존심이 허락하기 힘든 최악의 지점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화려한 왕국의 왕자에서, 도주한 살인자가 되어 냄새나는 양떼들을 몰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 우리가 그러한 위기 속에 있더라도, 처지를 비관할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인생 밑바닥의 일도 묵묵히 진행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자기 자신을 깨끗이 비우는 정화의 기간일 겁니다. 우스갯말로 '피 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상상 그 이상의 인생 계획을 제시 하실 하나님을 꼭 만나게 될 겁니다.

모세에게 닥친 마지막 죽을 위기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고통은, 자신을 밑바닥에서부터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새로운 계획까지도 받은 후에 닥친 정말 난감한 위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실전에 돌입 할 준비를 하던 모세는, 냄새나는 목동 옷을 벗고 가족들 앞에 자랑스럽게 섰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웬 황당한 일인가요. 사명을 주시기 전에 미리 말씀하지지, 갑자기 할례를 안 받았다며 죽이려 하신 겁니다. 아내가 차마 남편은 건들지 못하고 애꿎은 아이들 것을 베어다가 놓았는데, 하나님은 그걸 보시고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도대체 이게 뭔가요.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이야기도 모세의 일생을 세 번의 죽을 고비라는 큰 줄거리 속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 속에는 이처럼 이해 할 수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의구하게 되는 위기가 찾아 올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평생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신앙적 위기일 겁니다.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신비의 고난은 그 의미가 참 큽니다.

먼저, 이 알 수 없는 고난의 이야기는, 절대자요 신이신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인간의 이해와 지략으로는 알 수 없다는 숭고한 고백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분이 만약 우리 인간의 이해 속에 파악되시는 분이라면 그 분은 더 이상 신이 아닐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진정한 신으로서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신비로서의 여지를 남겨 두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이해의 범위에 초월하여 계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많은 구절들은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8:17)

더 나아가 알 수 있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모세의 이 마지막 위기는 다름 아닌 신앙의 위기였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고난은 하나님을 재대로 알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두 번째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던 회심의 경험 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고난은 그 일을 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체에 대하여 심한 의구심과 회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앙적 위기입니다. 심지어 그 위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궁 속에 남겨져야 하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위기도 우리들의 신앙 여정 속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어쩌면 우리 신앙이 성숙하는 가장 끝자락에 하지만 가장 무섭게 다가 올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극한 신앙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주지하여야 할 것은, 모세의 내면적 갈등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그 갈등의 모세를 통하여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적 고민과 갈등보다도 더 큰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적 과업과 함께 우리의 의기양양한 신앙심이 같이 떴다면, 아마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보다는 우리 자신을 쉽게 영웅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비록 모세는 우리들에게는 영웅으로 남아있지만, 그 자신은 신의 절대적 권위아래 이리저리 휘둘려 졌던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낮게 서 있었을 겁니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신앙적 위기에서도, 모세처럼 자신의 맡은 소명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의 여러 갈등보다는 그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역과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그 은혜에 힘입어 약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죽을 고비를 남긴 후 모세는 애굽에 남아 있던 그의 친족들을 이끌어 내는 구약 최고의 하이라이트에 지도자로서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업은 철저히 이타적인 것이었고 자기 자신의 복락에는 별 효렴이 없었던 일입니다. 그가 다시 애굽의 왕자가 누리는 영화를 차지하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습니까? 지독하게 말 안 듣고 노예근성에 젖어있던 골치 덩어리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수십 년간 고생만 직살 나게 하였고, 심지어 자기 자신은 한 번의 실수 때문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약속이 땅에는 이르지도 못하고 죽고 맙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 철저히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진 꼴이 된 것만 같을 겁니다. 그러나 모세는 마지막에 자기 하나의 헌신으로 인해 수많은 히브리 민족을 구원해 내는 과업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파란 만장한 일생의 종착지는 자기 자신이 아닌 바로 그의 이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은 신앙적 위기를 겪기도 하였고 마지막 영광에 참여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과업 속에 그는 마지막 오점만 남기고 쓸쓸히 무대 밖으로 퇴출당하였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사명 의식을 새롭게 환기 시켜야 할 것입니다. 모세처럼 우리 소명의 궁극적 종착지도 나 자신이 아닌,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의 이웃일 겁니다.

기민석 교수(침신대 구약학)
기민석 교수(침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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