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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하 목사] 작은 일에 충성하라 -5(아가서 1:8)

  • 설교영상
  • 입력 2019.10.11 18:57
  • 수정 2019.10.23 09:22

오늘은 아가서 1:8을 근거로,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제목을 통하여,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공부한 아가서 1:7에 대한 응답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미 공부한 바와 같이, 목동을 사랑하는 여인은, 자신의 주어진 임무수행에 분주한, 충실한 목동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 떼를 이끌고 그들을 먹일 꼴을 찾아 넓은 벌판을 이리저리 이동하는 목동을 연약한 여인의 처지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다른 목동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랑하는 그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으로 인해서 자칫 길거리의 여인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술람미의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녀의 주위의 사람들은, 조바심을 버리고 의연하게 사랑하는 목동을 기다리라고 하는, 성숙한 조언으로 위로하며 격려합니다. 아가서 1:8의 말씀입니다.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아멘. 양 떼를 먹이기에 분주한, 사랑하는 목동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면, 목자들의 거처 근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묵묵히 기다리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가서 전체는 비유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항상 비유가 상징하는 대상을 물색해야 합니다. 먼저 “양떼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의 “양 떼”는 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하는 단어로 활용됩니다. 목자나 목동이 주권자이신 하나님이나 세상의 권력자들을 상징하는 반면에 양 떼는 하나님이나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 보살핌을 받는 일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려고 한다면 양 떼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택함을 받은 구원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사실 어느 조직이든지 그 조직에 가입하게 되면 처음에는 다소의 어색함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이 품어왔던 전통이나 관례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의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다소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스스로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입 초기에는 자신보다 먼저 가입한 선배들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론이 되기도 합니다. 양 떼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것은 모범이 될 만한 선배들의 행동을 수행 모델로 삼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교회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초신자들일수록 신앙생활의 수행모델이 필요합니다. 삶의 발자취로 수용할 수 있는 경건한 믿음의 선배가 필요한 것입니다. 역으로 신앙생활의 모델이 될 만한 경건한 선배들의 행동은 영적 후배들의 수용할 만한 “양 떼의 발자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믿음의 사람들의 롤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에 등장하고 있는 “목자들의 장막”은 문자 그대로 ‘베이스캠프’를 가리킵니다. 낮에 양 떼에게 먹일 꼴을 찾아다니다가 피곤해진 목자들은 베이스캠프, 즉 목자들의 장막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합니다. 여인이 찾고 있는 목동도 언젠가는 그 장막을 찾을 것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흩어져 일하던 목자들이, 맹수들이나 도적들의 습격 및 급격한 일교차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상부상조의 단결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필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에서 볼 때 목자들의 장막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각자의 은사에 따라 세상에 흩어져 살다가 영적인 면모를 새롭게 가다듬기 위하여 신앙공동체로 모이는 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역들 중의 하나가 됩니다. 흩어진 교회로서의 개별적인 교회들이 세상의 삶을 통해서 겪었던 다양한 삶의 경험들과 정보들을 지역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취합 분석하여 복음전파를 위한 전체 신앙공동체의 계획수립과 방향설정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염소 새끼를 먹이라”는 구절은 오늘 말씀의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에게 복사를 시키거나, 팩스를 보내게 하거나, 휴지통을 비우게 하거나, 청소를 시키는 등의 허드렛일 시키곤 합니다. 일부 신입사원들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속을 끓이기도 합니다. 짧은 시일 내에 회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을 제대로 배우려면 인내심은 물론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야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일류대학교를 졸업한 재원이라 할지라도,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기초부터 다지지 못하면 향후 맡게 될 큰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허점을 드러낼 확률이 높아집니다.

영적인 측면에서도 이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기지도 못하면서 걸을 수 없고, 걷지도 못하면서 달릴 수 없습니다. 맡겨진 작은 일, 또는 적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큰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25:23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아멘.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걸음을 떼기도 전에 열 걸음, 백 걸음을 달리려고 합니다. 목표점에 도달하기는커녕 발목이 부러지거나 가랑이가 찢어지는 불행과 만나곤 합니다. 성도들의 믿음도 한걸음씩 한걸음씩 차분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아들을 낳기까지 무려 25년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했습니다. 긴 인내의 시간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하며 성숙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별명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왕을 너무 사랑하기에 조바심마저 갖게 된 술람미를 은연중에 지켜보고 있었던 그녀의 주위의 사람들이 목자들의 장막 근처에서 염소 새끼나 키우라는 말을 던진 것이 결코 그녀를 멸시하거나 조롱하기 위한 차원에서 비롯된 언사가 아닙니다. 왕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이루기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중점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새끼 염소를 키우는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로 인해서 어떠한 큰 일이 주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는 주어진 일이 어떠한 일이든 항상 성실한 태도로 임했습니다. 간수를 도와 감옥의 행정업무를 보조하는 일을 할 때에도 정직한 태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일이었지만, 향후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이후에 맡게 될 국가적인 큰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편 105:17-19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아멘. 눈으로 보기에 크든 작든, 많든 적든 하나님의 일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의 경중에 눈길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대하는 각 성도들의 정직한 태도를 감찰하십니다.

그런데 사역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습니다. 새끼 염소를 먹이는 아주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목자들의 장막 근처”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의 믿음생활을 암시합니다.

요즘 유튜버를 비롯한 각종 SNS를 통하여 교회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정규 신학도 공부하지 않고 교회에 제대로 출석하지도 않으면서 주워들은 얄팍한 신학지식을 앞세워 기독교변증론자를 자칭하는 사람들도 이에 속합니다. 길 잃은 양들을 끌어 모아 자칭 목자의 권위를 행사하며 교회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헛된 야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저 언어의 유희에서 시작해서 언어의 유희로 끝나는, 결국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로 전락하기 십상인 형태인 것입니다. 이런 곳에 마음을 빼앗겨서 영적인 볼모가 되는 자는 무지하고도 불쌍한 자가 될 뿐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인터넷상에서의 유사 사이버교회는 성경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쓴 위선적인 태도로 본의 아니게 서로를 속이게 되는 구조,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는 구조, 연합하여 복음 사역에 힘쓸 수 없는 구조,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는, 믿음의 인내를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다는 점과 주님의 맡기신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라도 교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실상으로서의 교회를 떠나서 가상의 교회에 몰입한다면, 새끼 염소가 아니라 새끼 호랑이를 키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어찌 보면 믿음생활이라는 것 역시 생각만큼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거하시는 목자들의 장막을 떠나지 않고 맡겨진 새끼 염소를 키우는 소박한 삶으로부터 믿음생활이 시작된다고 하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로 인하여 괜한 부담감을 갖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작은 일에 인내심을 가지고 충성하시되, 반드시 교회와 연합하여, 믿음의 생활을 경영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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