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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6. 11:30 공주꿈의교회가 조성한 역사공원에
펜윅 선교사 기념동상을 건립하고 제막식 거행

[뉴스] 공주꿈의교회 역사공원에 펜윅선교사 동상 제막

  • 교단
  • 입력 2019.06.17 17:20
  • 수정 2019.09.13 22:20
공주꿈의교회 역사동산에 건립된 펜윅선교사 동상

6월16일 주일 오전 11시30분 공주꿈의교회에서 안희묵목사와 성도들은 공주꿈의교회에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그곳에 펜윅 선교사 기념동상을 건립하고 제막했다.

침례교단을 설립한 펜위선교사에 대해 설명하는 안희묵 목사

펜윅선교사 제막식은 공주꿈의교회 장로 15명 전원과 교회 성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교회 행사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동상 제막식은 침례교단을 창설한 펜윅선교사에 대한 안희묵 목사의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안희묵 목사는 개인적으로는 펜웍선교사의 전도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외고조할아버지로부터 신앙을 계승한 인연을 강조하며 펜윅의 공로와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 우리도 거룩한 소모품처럼 겸손히 섬기자고 강조하였다.

특별히 안희묵 목사는 역사 연구의 일환으로 펜웍 선교사를 공부시켰던 보스톤 클라렌톤 스트리트 침례교회 담임목사 고든 목사가 설립하여 오늘에 이른 미국 고든칼리지에서 펜웍선교사를 목사 안수하기로 했던 당시 교회 회의록 및 관련 역사 자료를 수집해 왔음을 말하며 공주꿈의교회가 침례교단의 어머니 교회로서의 역사성과 위상을 지키며 교단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자고 강조했다.

기도하는 증경총회장 안중모 목사(꿈의교회 원로목사)

이어 꿈의교회 원로목사이자 증경총회장인 안중모 목사의 기도로 장로들과 성도들의 큰 박수로 제막되었다.

공주꿈의교회 역사공원에 설치된 펜윅선교사 기념동상은 꿈의교회 역사관과 더불어 이곳을 탐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교단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아울러 교회에서 이미 구입한 공주꿈의교회 초기교회 터에 복원을 추진중인 공주시 반죽동에 위치한 공주꿈의교회 초기교회를 복원하면  이곳 역시 침례교단의 자랑이 될것이다.

동상제막식에 함께한 꿈의교회 성도들

 

아래는 펜윅선교사 동상과 함께 새긴 동판의 내용이다

한국을 사랑한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선교사

말콤 펜윅(한국명 편위익, 1863~1935.12.6.) 선교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출신으로 1889년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식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비록 찌그러진 누추한 양철통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구하는 물을 나를 수 있다.”라는 신앙적 열정으로 그해 12월, 26세의 나이에 평신도 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펜윅은 황해도 소래에서 한국어를 배운 후 원산으로 옮겨 복음을 전하다가 1893년 미국 보스톤 클라렌톤 스트리트 침례교회 담임목사 고든이 운영하던 선교 훈련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클라렌톤 침례교회에는 ‘엘라씽 기념 선교회’가 있었는데 펜윅의 영향을 받아 1894년 침례교 최초로 폴링과 가드린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고, 그 후 2차로 스테드맨, 에클스, 앨머 선교사 일행을 파송했다. 이들은 서울을 거쳐 1896년 공주와 강경, 칠산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신학 공부 후 목사 안수를 받은 펜윅은 1896년 재차 내한하였다. 1901년 ‘엘라씽 기념 선교회‘로부터 선교 사역을 양도받고 신명균을 파송하여 공주를 기점으로 내륙 선교의 기틀을 잡았으며, 1903년 공주에 성경학원을 설립해 인재를 양성했다. 이는 현 침례신학대학교의 영적 전신으로 사역자를 양성한 최초의 교단 신학교였다. 펜윅은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찬미’ 같은 찬송가 간행으로 문서선교에 크게 기여하였다. 1906년에는 펜윅이 지도한 순회 사역자들이 설립한 31개 교회를 중심으로 ‘대한기독교회’를 창설했는데 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전신이다. 

침례교단을 창설한 펜윅 선교사는 토착화 선교를 모토로 신명균, 장석천, 이종덕 등 250여명의 한국인 사역자를 배출하였으며 200여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의 영향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은 만주, 시베리아, 몽골 등 복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였는데, 공주꿈의교회 9대 담임목사였던 박노기 목사를 포함한 4명은 1918년 시베리아 선교를 하러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순교했다. 또한, 펜윅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해 32명의 교단 지도자들은 감옥에 투옥되었고 전치규 목사는 심한 고문으로 순교하였다. 결국 교회들은 폐교되었고 1944년 5월 10일 교단은 해체되었다.

한국 선교에 평생을 바친 펜윅 선교사는 46년의 사역을 마치고 1935년 12월 6일 원산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내가 죽은 후에 봉분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칫 봉분의 높이마저 교만해 보일까 봐 남긴 것이었다. 평생 섬김의 마음으로 복음에 헌신한 이런 펜윅 선교사의 선교적 열정과 정신은 현재 3500여 한국 침례교회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2019. 6. 4.

기독교한국침례회 73대 총회장

안희묵 목사가 적고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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