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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만 칼럼] 역동성을 간직한 그리스도인   

  • 칼럼
  • 입력 2020.11.10 11:45
  • 수정 2021.07.14 08:13

가롯 유다의 증언이란 책을 쓰신 소설가이시며 목사이신 백도기 목사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 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전도사 시절에 동료 전도사님에게 이 책을 소개 받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와 너무나 똑같이 닮은 가 롯 유다의 모습이 그 책속에 있었고 내가 가 롯 유다임을 시인 할 수밖에 없도록 써내려간 섬세한 심리적 분석과 예리한 통찰력 앞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읽었던 책이어서 그 작가이신 목사님을 꼭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수원에서 한민 교회라는 교회를 개척하여 직접 목회를 하시며 집필 활동을 해 오셨다고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수원 우만동이란 곳의 작은 아파트에서 사모님과 둘이 노후를 보내고 계신 것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언젠간 꼭 한번 찾아가 뵙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백도기 목사님은 “제도화된 기독교”는 진정한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 했다. 현대 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조직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제도화된 교회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제도화된 교회는 “삶의 역동은 없고 형식과 제도에 얽매여 있는 것이 대분이다. 삶의 역동성은 형식과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복음”과 “생명의 교제”가 역동성을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삶의 역동성을 가진 지체들의 공동체로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교회 중 주님께 가장 칭찬 듣는 교회중의 하나 였다.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의 신앙은 믿음의 소문을 주변도시들에 퍼지게 하여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도들이 아무 할 말이 없게 만든 역동적인 삶을 가진 사람들의 교회 공동체 였다(살전1:8절).

이들의 역동적인 삶의 실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비롯된 삶에서 시작된 것 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그 말씀이 그들 속에서 살아 역사 했다(살 전2:13절). 내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동적인 삶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사도들을 본 받았다(살전1:6절).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오직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에서 비롯된 가르침을 베풀었다 (살 전1:5절). 즉, 전하는 자와 말씀을 받는 자의 자세와 태도가 바른 사역자와 지체들 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도 중요하지만 듣는 자의 자세와 태도도 역동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노우스 캐롤라이나”에서 400 여명의 대학생 연합 집회를 했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바울 형제의 소개로 가게 된 집회였다. 형제의 아버님은 현재 선교사님이신데 지난날 나에게 몇 꽤 오랜 시간 제자 훈련을 받으신 분으로 내가 전하는 복음을 사랑 하시는 분이시다. 그 아들이 아버님만큼이나 내가 전하는 복음을 사랑해서 미국에 가면 꼭 형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집회를 했었다.   
그 집회를 준비한 스텝 목사님들이 7분 계셨는데 그 중의 젊은 목사님 아버님과 어머님이 한국에서 아들을 보러 오셨다가 그 집회에 참여 하시게 되었다. 목사님 젊은 사람들 집회이지만 저희 부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아니요 참석 하셔도 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동안 두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와 태도가 남 다르셨다. 어떤 젊은이들 보다 집중하고 사모하며 말씀을 들으시는 두 분의 모습에 큰 도전이 되었다. 집회를 마친 후 "
목사님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고신 측 장로교에 다니면서 장로가 되었는데 제가 태어나서 생전 처음 듣는 말씀을 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평생을 교육자로 지내신 두 분은 인생의 마지막을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고 고백을 하셔서 캄보디아로 가서 선교 하실 것을 권유했고 흔쾌히 순종 하시고 선교사로 나가 사역하고 계시는 중이다. 선교지에서 학교를 하고 있는 선교사에게 가시게 했는데 선교사 부부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많이 염려가 되어 부부를 앉혀놓고 권면을 했었다. 이분들은 고신 측 에서 잔뼈가 굵으신 장로님과 권사님이시니까 말조심하고 행동 함부로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불과 얼마 되지 않아 그 선교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도 아프고 죄송하기도 했었다. 선교사로부터 한마디 해명도 없어서 마음이 상했었다. 얼마 후에 캄보디아의 한 사업가의 현지에 가서 두 분을 만났다. 내 마음을 알고 계신 김 복남 선교사가 주선 하신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람 소개 하는 게 이렇게 어렵고 힘이 드네요 ~ 정말 죄송합니다. 환하게 웃으시며 이곳에 나를 가라고 권면하신 분은 목사님이시지만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저는 그 선교사님과 저와 맞지 않을 뿐이지 어떤 감정도 없습니다. 진심으로 말씀 하시는 그 말씀 한마디에 너무 큰 위로가 됐다. 
그 후에 말없이 이곳저곳 현지의 선교사님들을 돕다가 지금은 한 교단에서 세운 선교 단체의 학교를 맡아 교장을 하시면서 어린이들을 교육 하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선교 중이시다. 어떤 젊은 사역자들보다 더 열심히 있으시고 역동적인 삶을 살고 계신다. 이런 분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 나는 기도하며 선교 단체를 만들었다. 아직은 돕지 못하고 있지만 곧 섬길 예정이다.

두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나는 내가 더 큰 도전을 받았고 특히 큰 시련과 고난으로 생각 될 현실적인 문제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맡으며 부끄러워했었다. 미안한 마음을 잔뜩 안고 간 내 앞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에서 오히려 내가 큰 위로를 받았다.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과 “시련”의 때에 그 진가가 드러난다. 그분의 역동적인 삶을 보며 그래 저 모습이 진짜 예수쟁이의 모습이지 생각 했었다. 백도기 목사님도 그의 책들 속에서 “스토리의 테 마 원형이 고난 과 시련이다”  백 목사님의 또 다른 작품 “골짜기의 종소리”에서 “고난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 목사가 어린손자에게 하는 말이다.” “고통의 의미가 어려워서 이해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 “고통을 통해서 성장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고통은 정말 참혹한 비극이거든” “그런 사람은 고통의 진정한 가치는 모른단다,” “아무리 큰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그 속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란다.” “고통 속에서 참다운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참혹한 비극의 사람이지만” “고통 속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란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에게 시련과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절망 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 속에서 쓰러지고 넘어지긴 해도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지는 않는다.

역동적인 삶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후4:8절)”

 이 역동적인 삶의 능력은 “질그릇 같은 내 마음속에 주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고후4:7절)” 쉽게 깨져 버리고,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넘어지는 “질그릇 같은 나”이지만 내안에 죄와 죽음과 세상을 이기신 보배이신 주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 설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뚜기 인생을 사는 역동성 있는 삶을 내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의지하는데서 주어지는 은혜의 삶인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어려운 고통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암울해 보이고 참담해 보이는 현실도 그 고통 속에 깊은 의미가 숨져져 있다.

백 목사님은 현대인들은 “뿌리가 없는 나무들처럼”,“거센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는 눈발처럼” 근원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다고 하시면서 진정한 신앙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고난을 통해 견디고, 인내하며,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고, 주님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을 기꺼이 허락 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 주님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바르게 하신다. 

주님도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히5:7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이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길이 통곡과 눈물이 없이는 가실 수 없었던 좁은 길이었던 것이다. 눈물과 통곡의 기도는 삶의 질곡에서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자세와 태도의 기도다.
시편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6절)고 말씀 하고 계신다. 

바벨론 포로 노예생활 70년에 만신창이가 된 몸도 마음도 다 지쳤다. 힘없는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과 함께 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했고 남겨둔 고향의 형제자매들을 그리워하며 바벨론 그 발 강가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 아무것도 기댈 것 없는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대로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다(렘29:10~11절).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을 맛본 그들은 마치 꿈꾸는 것 같았고 그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으며 
혀에는 기쁨의 찬양이 가득했다(시126:1절). 하나님이 행하신 대사로 인해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시126:3절). 절망과 탄식의 시간을 기쁨과 춤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절망과 탄식 속에서 흘리는 그들의 눈물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진지해 졌으며 그 말씀을 이루시는 역동적인 하나님을 다시 경험한 것이다. 

역동적인 삶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당신의 자세와 태도가 당신의 삶을 결정한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 아파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 고난과 시련이 없이는 주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고난과 시련 없이 진지해지는 인생도 없다.
고난과 시련 없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납작 엎드리는 인간도 없다. 다윗은 고난에 대해 이렇게 고백 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절).“
하나님 앞에서 그릇 행하 던 “나” 고난 후에 말씀을 지키는 자로 주의 율례를 행하는 자로 세우시기 위한 훈련이 고난과 시련인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바로 잡아 주시고 예수의 향기를 가진 
사람들로 세우시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에레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신다고 고백했다(렘 애가3:3절). 

자신에게 임한 쑥과 같이 쓰고 담즙같이 쓴 고난을 심령에 생각 할 때 낙심이 되지만 중심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생각하므로 소망이 된다고 고백 하였다(렘 애가3:19~22절).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신다고 고백하고 있다(렘 애가3:24~25절).

하나님이 젊을 때 메워주신 멍에를 메고 잠잠히 기다리며 그 입을 티끌에 대라고 가르치고 
있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고 수욕으로 배를 불리라고 가르쳤다(렘 애가3:26~31절).

주님이 나를 치실 때 아프다. 힘들고 괴롭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주님을 닮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신다. 견디고 인내하며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를 배우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을 사모하는 자세와 태도를 배우라  신앙생활에 대충 대충은 없다. 적당히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인생 모두를 내어 던지기 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사람 막대기(몽둥이)” 와 “인생 채찍”으로 나를 훈련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삼하7:14~15절).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고난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축복이지 저주가 아니다. 고난과 시련 중에도 환하게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선교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젊은이들 말대로 썩 소(썩은 웃음)가 아니라 몸에서 배어 나오는 기쁨의 얼굴은 너와 내가 이루어 가야할 주님의 형상이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대하는 그분들의 자세와 태도를 생각 할 때 마다 나의 지세와  태도를 바르게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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