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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만 칼럼] 교회(하나님 군사로서의 교회) 

  • 칼럼
  • 입력 2020.10.02 20:55
  • 수정 2020.10.08 10:21

미국 시골의 작은 마을 엄마가 홀로 빨래를 널고 싱크대에서 설거지 하는 모습이 크로즈업 된다. 행복하게 살던 4명의 아들들이 모두 전쟁터로 달려가 홀로 남은 것이다. 주방에서 일하던 엄마의 눈에 자신을 찾아온 목사님과 공무원이 눈에 보인다. 슬픈 소식을 직감한 엄마는 밖으로 뛰어나가 공무원이 손에든 편지를 보고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아들 세 명이 한꺼번에 전쟁터에서 전사한 전사자 통보 문 이 이었다. 
처음 이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전사자 통지서를 타이핑하던 여자 공무원 이었다. 여자 공무원은 이 소식을 상사에게 알렸고 높은 지위에 까지 마침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대통령은 즉각 명령을 내려 4 형제 중 막내인 졸병을 반드시 구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에 8명의 특수 임무를 띈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졸병을 구해내는 스토리의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인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영화 내용이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륙상전 때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한 실상을 그린 영화다. 군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 라이언 일병 하나를 구하기 위해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모하고 미친 짓이다. 라이언 일병은 독일군 적진 한복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인데 라이언 일병하나를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비효율적이며 상식적으로도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세 아들을 잃은 엄마가 막내만이라도 꼭 살아 돌아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겠는가?

전쟁에서 옳고 그름이란 없다. 전쟁에서 도덕과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이느냐 죽느냐의 절박함이 존재할 뿐이며 적을 죽여야 내가 사는 생존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휴전 상태로 전쟁상태와 똑같은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군에 의해 대한민국 공무원이 총살당하고 시신은 불 태워져 유기 당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받은 대통령은 아무 대처도 하지 않고 UN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언급하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여 세계의 뉴스거리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국방부와 통일부 외교부 장관들은 '더 조사해 봐야 한다. 적진이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월북한 것이다.' 라는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어서 국민들의 분노를 들끓게 하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미국 정보부에서 사고가 나기 전 이미 정보 제공을 했지만 우리 군이 무시하고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이 폭로 되었다  
국가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군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인가? 군을 지휘하는 장관이나 동수권자를 왜 국민이 선출 하는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이다.  

사고 당시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북한군을 향해 경고를 하든지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하든지 분명하게 대처했어야 옳은 일 아닌가? 국가의 위신과 국민의 자존심 따위는 관심도 없어 하는 정부라면 그 정부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북한군이 그렇게 까지 할 줄 몰랐다는 군의 변명은 가소롭기 까지 하다. 전쟁터에서 마주친 적이 나에게 총을 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하다 총 맞아 죽은 꼴 아닌가? 온갖 거짓을 꾸미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게 아니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지 뭔 헛소리들인가?  

9,11 사태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추돌에 의해 무너졌고 1000명이 넘는 미국인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미국 정부는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여 테러 주동자인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내어 응징해 처단해 버렸다. 자국민에 대해 테러를 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할 경우 반드시 응징하는 정부가 미국 정부다. 우리나라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 하는 것인가?   
졸지에 아빠를 잃은 어린 아들과 딸이 커가면서 이 나라와 어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그 아이들의 깊은 마음의 상처와 원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월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가족들이 겪어야 할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전 세계가 연합하여 북한 핵 포기를 위해 경제적 제제를 가하고 있어도 인도주의. 평화 운운하며 북한 김정은 정권의 억지와 조롱과 온갖 만행에도 참고 인내하며 입 다물고 사는 일을 계속 할 참인가?  그렇게 당하고도 여전히 평화 타령하는 것은 극단의 민족주의인 “국 뽕 주의” 이거나 북한 정권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오해 받기 딱 알맞은 행동이 아닌가?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나는 이 국가적 위기 사태를 보면서 나의 신앙에 대해 생각 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니며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복음으로 싸워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려내는 싸움인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악한 영인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심 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셨다, 
“구원의 투구”와 “의의 흉배”와 “믿음의 방패”와 “진리의 허리띠”와 “평안과 복음으로 예비한 신”으로 무장하는 것은 모두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무기들이다. 적을 척살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주님은 이 성령의 검(칼)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하셨다. 전쟁에서 방어와 공격 무기는 둘 다 아주 중요한 무기들이다. 최선의 방어를 위한 무장이 적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며 예리한 칼을 가지고 적을 척살하는 강력한 공격 무기는 전쟁 시에 적을 “찌르고” “자르고” “갈라내는” 유일한 공격 무기 인 것이다.

전쟁터에 아무 무장도 하지 않고 비무장으로 나간다면 죽지 못해 환장한 사람이다. 교회는 이런 영적 무장이 제대로 되어 있는 군사들의 모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리가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해서 훈련하고 진리가 내 삶에서 흘러넘치기 까지 훈련 하고 무장하는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안의 하나님의 군사들이다. 

주일 오후 성경 공부 시간에 형제가 나에게 물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는데 도움을 요청해 올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 이었다. 
그 영혼이 너에게 마음을 다해 도움을 요청 하면 앞뒤 가리면 안 된다, 당장 달려가서 돕고 섬겨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형제는 성경공부가 끝나자마자 달려갔다. 모태 신앙인 자매에게 너 정말 주님 만나기 원 하냐? 그렇다면 내가 목사님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어린 딸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날 자를 받아 놓은 상태였고 아이의 생명을 보장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얼마나 절박한 심정 이었겠는가? 그 집에 가서 아이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고 당신들 둘이 문제라고 했다. 당신들이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아이의 건강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 이라고 말하고 계속 부부에게 복음만 전했다. 금요일 큰 수술을 받아야 할 아이가 수술 없이 퇴원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사실은 가적도 아니다. 두 사람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인 것이다. 

영적 싸움에도 타이밍이 있다. 그 영혼을 구원할 골든타임이 있다. 그 골든타임이 여러 인간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시험(Test)이 주어질 때다(약1:2절).
나는 영혼들을 만날 때 마다 그 사람이나 주변에 일어난 죽고 사는 육신의 문제로 그 영혼의 시선을 흐리게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육신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이 가장 먼저이기 때문이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인간을 살려내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 영혼을 살려내시는 예수를 바로 소개하고 바로 믿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사역의 전부이며 목회의 전부다. 마귀는 영혼들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죄의 기관 단총으로 공격하고 죽여서 지옥 불에 끌고 가려고 단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 하기만 한다면 그는 준비된 하나님의 군사가 아니다. 적을 거꾸러트리고 영혼을 살려내는 일에 몸과 마음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있으나 마나한 별 볼일 없는 오합지졸이다. 단 한명의 영혼도 살려낸 사실도 없고 경험도 없다면 그는 폼 생 폼 사 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 인 사람들이다.

적의 반응에 즉각 대응하는 투철한 군인정신과 내나라 내 백성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우는 응전 태세를 갖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이다. 당신과 내가 지금 구해내야 할 라이언 일병은 누구인가? 당신은 적진의 한 복판에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본 경험이 있는가? 지금도 나에게 가장 가치 있고 고귀한 싸움이 한 영혼의 구원에 대한 싸움인가? 아니면 방관자 인가?  아니면 오히려 적과 내통하는 자인가? 아니면 변명을 일삼고 거짓으로 포장하며 살고 있는가? 
오직 유일한 생명의 길인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지키고 보존하여 하나님 나라를 굳건히 세워가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이 너와 나 우리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 생명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기만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문책을 받아야 한다. 평생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살아온 나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관심 없다. 그런 가치관의 사람들은 세상에 널려 있다. 굳이 교회 안에 들어와 영적인 삶에 무관심 하다면 뭣 하러 교회에 나오는가? 세상에 반겨줄 동우회와 수많은 조직이 널려 있다. 

이번에 일어난 이 국가적 사태를 보며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 모습은 아닐까? 구경 하듯 한 멍청히 바라보는 군인들이 나라에 왜 필요한가? 군대를 지휘하고 통솔해야 할 지휘관이 적의 만행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뭣 하러 그 자리에 연연하나? 전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민의 편이 아니라면 왜 대통령을 하려 하는가? 


하나님 나라의 군사 된 나는 어떤 군인인가 생각 한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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