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9:13에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라는 문구가 있다. “고의로 죄를 짓는다”라는 것은 그 행위가 ‘죄를 짓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 죄악된 행위를 하고야 마는 것을 가리키는데, 구판(舊版)인 개역판 성경에는 “고범죄”라고 번역되어 있었다.NIV는 ‘willful’이라는 단어로 옮겼는데 이 단어의 용례를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will’(의지)이라는 명사에 ‘full’(많은)이라는 어미를 합성하여 만든 형용사로만 생각하기 십상이다. KJV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하고자 ‘presumptuous’
제108차가 규약개정을 한다면서 임시총회를 소집했다. 그런데 ‘규약을 개정하겠다고 임시총회를 소집한 사람들이 오히려 【총회규약】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아서 이를 보는 목회자들을 심란(心亂)하게 만들고 있다.사정이 매우 심각하므로 이번 임시총회를 개회하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무자격 임원 때문이다.』먼저는 임시총회를 개최하는 것과 의안을 마련하여 상정하는 결의를 한 임원회가 불법 임원회이다. 지금 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임원들 중 【총회규약 8조 1항】의 피선거권 규정에 저촉이 되어 임원이 될 수 없는 사람들
갑자기 천사가 다가오더니 내 손을 붙잡아 어디론가 데려갔다. 문득 팔봉산처럼 보이는 산봉우리를 지나 남쪽 어느 골짜기에 이르렀다. 천사는 애초에 하나님 말씀으로 다스려지던 어떤 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을 순식간에 내게 보여줬다.왕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항상 바르고 근면성실하고 엄정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엄격하게 준행했다. 다른 하나는 얼간이였다. 아무렇게나 말을 해댔고, 만사를 기분 내키는 대로 했다. 즐겨하는 일은 딱 하나였다. 아버지의 보물창고에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뒀다가
제108차 집행부가 임시총회 공고를 아래와 같이 2회에 걸쳐 이중으로 공고하는 한편, 상정안건도 3개 항목에서 5개 항목으로 변경시키는 등 이를 보는 대의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2019년 4월 6일자 침례신문 공고임시총회 공고일 : 2019. 4. 3. 상정 안건 ① 총회규약 제8조 7항 ② 총회규약 제11조 4항 ③ 총회규약 제25조 5항, 제26조▲ 2019년 4월 13일자 침례신문 공고임시총회 공고일 : 2019. 4. 3. 상정안건 ① 총회규약 제8조 7항 ② 총회규약 제11조 4항 ③ 총회규약 제25조 5항, 제2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라는 말에 명예훼손 소송으로 응수를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찌 그렇게까지 말을 했는가 싶다. 그렇지만 전(前) 법무차관의 성추행 사건, 강남의 클럽 ‘버닝썬’ 사건이 쉼 없이 뉴스에 오르며 그 사건들의 내막이 들춰지는데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저들의 추잡함이 개인에게 그치지 않고 국가 공권력이 심장부까지 연류 되었다는 심증뿐만 아니라 공적 위상과 막중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어찌 저렇게 추했는지, 정말이지 입을 열어 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그러다 습여성성(習與
【와각지쟁(蝸角之爭) - 비렁이 끼리 자루 찢는다. / 대국(大局)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는 일로 쓸데없이 다투는 것을 빗대어 말한 고사이고, 자기들의 처지를 망각한 채 장차 먹고 살아야 할 귀중한 자루까지 찢어버리면 생계는 어찌 이을 것인가를 빗댄 말이다.】침례신학대학교(이하‘학교’)는 지금 「임시이사(관선이사)」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반 기업으로 말하면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처지인 셈이죠. 그러니 침례교단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종사하는 모든 교직원들이 숨죽여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 처지를 벗어나기가 묘연할 뿐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신라에 유입되었지만 주도적인 종교로 부상하는 데에는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속적인 정책의 뒷받침이 있었다. ‘법흥’ ‘선덕’ 진덕‘처럼 국왕의 공식명칭조차 불경에서 가져다 붙였고, 불교사상을 애써 부각시켰다. 불교가 신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종교가 된 것은 법흥왕 15년 무렵(A.D. 527)에 있었던 이차돈 순교사건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가 제13대 미추왕(味鄒王) 2년(263)이라는 설, 제19대 눌지왕(訥祗王: 재위 417∼458)때라는 설, 제21대 소지왕(炤知王: 재위 479∼500) 때라는 세 가지
탄광도시 ‘태백’이 석탄산업의 사양화에 따라 황폐되어갔다. 태백의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가 죽어가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갱도에 들어가 탄을 캐는 탄부들을 가리켜 흔히 ‘막장인생’이라고 하면서도 그 말의 참 뜻이 무엇이며, 그 막장인생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태백’의 생활환경, 그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과 장래, 그에 따른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태백이라는 도시가 사람이 살만한 도시가 되고, 부나비처럼 날아든 막장인생이 아름다운 나비처럼 인생을 꽃피우고 생명의 뿌리를 깊게 내리는 곳이 되도록
글 : 임원주 목사 힌두교와 불교는 그 근본을 유야독존적인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심지어 ‘나’라는 인식조차도 부인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데에 둔다. 그래서 두 종교는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관계와의 ‘인연’을 끊는 것으로 종교수행을 시작한다. 이런 수행법이 유행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 때문에 인도는 출가수행을 ‘바라문’ 계급에게만 허용했었고, 그 이하의 계급에게는 훗날 ‘마누법전’을 편찬하여 그 법령에 따라 살게 했다. 이 방법으로 힌두교라는 종교와 국가가 보존될 수 있었다. 불교가 국가에 미치는